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나헴 베긴 (문단 편집) === 사회 정책 === 총리직에 오른 베긴은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념했다. 일단 교육 개혁에 나섰는데, 의무 교육을 10학년까지 확대하는 한편 당시 유료였던 중등교육을 무상으로 전환했다. 이는 이스라엘 본토의 문해율을 높이는 한편으로 국민의 교육 수준을 향상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장기간병보험제와 국민소득지원제를 도입하는 한편, 그간 "사회적 평등"을 빌미로 보류되었던 컬러 텔레비전의 도입 또한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컬러 텔레비전을 상대적으로 늦게 도입한 나라로 기록되었는데, [[대한민국]]도 비슷한 시기에 도입되었으며 그간 "사회적 불평등 조장"을 빌미로 거절했다는 점을 보면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 운전면허 취득 연령 또한 17세로 낮춰졌다. 당시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지속한 총력전의 여파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최소한으로 실행했고, 전국민의 의식주는 [[스페인국|프랑코 시절의 스페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에 베긴 내각은 [[https://en.wikipedia.org/wiki/Project_Renewal_(Israel)|도시재정비촉진사업]]을 실행하면서 빈민촌에 대한 [[https://www.jewishvirtuallibrary.org/project-renewal|지원 및 재정비]]를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참고로 이는 베긴 본인이 직접 다 했으며, 1981년부터 주택부로 이관했다. 도시재정비촉진사업의 일환으로서 빈민촌들이 대거 철거되었고, [[도로]]와 [[신호등]] 및 [[상수도]]와 [[하수도]]를 포함한 사회간접자본에 [[https://he.wikipedia.org/wiki/פרויקט שיקום שכונות|대대적으로 투자했으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식주도 빠르게 개선되었다. 특히 어린이들과 노약자들을 위한 복지시설, [[경로당]], [[놀이터]]를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건설했다. 1983년 베긴이 퇴임할 무렵, 약 45만 명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았는데, 오늘날에도 도시재정비촉진사업은 진행중이다. 보수우파로서 자본주의적인 요소를 강화한 것도 덤. 미국의 영향으로 이스라엘이 친미우익적인 국가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1970년대까지는 철저하게 틀린 얘기였고, 이스라엘에서 우익이 강세를 보인것은 아무리 짧아도 1970년대 말부터였다. 참고로 오랫동안 (이스라엘 기준으로) 진보에 속하던 노동당이나 조정당이 장기집권했고, 이러한 사회주의적인 정책으로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매년 두자릿수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큰 효과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1973년에 있던 전쟁으로 막대한 인력손실이 있었고 또한 1974년 이래로 석유값이 폭등하면서 비산유국인 이스라엘의 물가와 실업률도 급속히 올라가기 시작하여 사회주의적 정책은 한계점에 도달하였다. 본격적으로 우파가 집권하면서 그 대안으로 민영화 정책등을 입안하기 시작되었는데, 베긴은 [[https://en.wikipedia.org/wiki/Simha_Erlich|심하 에를리히]]를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해 경제 체계의 우경화를 진행했다. 환율 조정에 있어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대신 시장에 맡기고, 각종 소비재에 꼭 붙던 보조금제를 폐지했으며, 환전 자율화를 추진했다. 관광세를 폐지하는 대신 [[부가가치세]]가 상향되었다. 이러한 정책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었고, 베긴 본인도 이를 바탕으로 민생이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오일 쇼크로 물가가 나날히 폭등하던 상황속에서 큰 실효는 없었다. 1983년 베긴이 사퇴한 직후, 이스라엘 경제는 위기를 맞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